타고나신 효도와 우애가 어려서부터 높고도 남다르셨다。일찍이 어렸을 적에 먼 곳에 가셨다가 아이들이 새 새끼를 잡아가지고 희롱하는 것을 보고는 불쌍히 여기고 놀래면서 탄식하여 말하기를『어린 것이 어미와 떨어진 그 심정은 저것이나 나나 다를게 없는 것이다』하고 하시며 드디어 돈을 주고 풀어 놓아 주면서 잘가라고 하였다。장성하여서도 순수하신 효성이 언제나 이보다 더할 수 없게끔 극진히 하사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였으며 형에게 공손하고 아우에게 우애함이 언제나 마음 속에서 우러나 예절에 어긋남이 없었다。 어머니가 등창으로 앓으시매 주야로 근심하고 당황하여 간호하시느라 밤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셨었는데 하루는 의원이 말하기를『족제비를 잡아 약을 해드려야만 가히 효험을 볼 수 있겠다』고 하였다。이에 공께서는 정성을 다하여 여러 산의 바위 틈과 숲을 해매시매 홀연히 족제비 한 마리가 앞에 엎드려서 피하지 않음올 발견하고 가지고 와서 시험케 되매 과연 약효를 보았고 또 아버님께서 노병(老病)ᅳ으로 여러 해를 앓게 되었는데 언제나 죽과 미음을 마련하여 정성을 극진히 하였다。 하루는 아버님께서 갑자기 수어(秀魚)가 잡수고 싶으니 구해 보라고 말씀하셨는데 때는 가장 무더운 여름이었고 해변은 거리가 먼 곳이라 도저히 해드릴 수가 없었다。 생각다 못해 그물을 메고 시냇가에 나가 다른 고기를 잡아서 대신 드리고져 하였는데 갑자기 한 자나 넘는 수어가 그물로 뛰어들었다 하니 지금의 수어가 옛적 효자의 어름속 잉어와 눈 속의 죽순과 같을진대 이 어찌 큰 효성은 하늘마져 돌봐준다 함이 거짓이 아니로다。 돌아가셔서는 시묘(侍墓)살이를 三년간 하시매 몸에는 언제나 상복을 벗지않고 애통하기를 처음과 같이하여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추우나 더우나 조석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으매 모든 선비들이 공경히 대우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하루는 선대 산소에 성묘 (省墓)할새 마치 산불이 나서 형편이 끝 물이 없게 되매 머리를 두드리면서 슬피 우시매 갑자기 바람이 반대편으로부터 불어와서 불이 꺼지게 되었다。옛적에 그런 효자의 이야기릍 들었는데 이제 실지로 목도(目賭)해 보게 되었도다。그 후 선비들이 글을 지어 서명 연판(連判)하여 정문(旌門)올 청원하였으나 마침내 포상되지 못하여 사람들이 모두 슬퍼하였으며 다만 옵지(德山邑誌)에만 꽃다운 이름을 기륵하여 천년에 까지 없어지지 않게 하였도다。 서기 一七六八年 戊子 月城 李海望 撰